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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게르만족의 모든 것, 게르만족 쉽게 알아보기

by seok__e 2020. 4. 29.

게르만족의 모든 것, 

게르만족 쉽게 알아보기


게르만족은 현재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준 거대민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게르만족의 역사를 통해서 게르만족의 큰 틀과 대이동, 그리고 분열된 게르만족이 지금의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간단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게르만족의 역사

1.게르만족의 토지부족

기록된 바, 게르만족은 역사상 가장 많은 부족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게르만족은 북유럽에 위치한, 발트 해 연안에서 수렵과 농경과 목축 생활을 하였습니다. 흔히 알려진 전투민족이라는 이미지로 마치 사냥을 할 것만 같았지만, 여느 민족처럼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게르만족의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급속도로 인구가 급증하게 됩니다. 그로인해, 급기야 토지가 부족하게 되고 생활에 필요한 자원의 부족을 느끼게 됩니다.


2.로마와의 영토전쟁

이후 게르만족은 방향을 바꿔서 자신들의 영토를 넓히고자 남쪽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남쪽에 위치한 로마와의 영토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로마제국은 전쟁 초반에 기세등등하고 큰 덩치를 가진 게르만족에게 밀리는 듯 보였지만 이후 그 전쟁의 흐름은 역전되어 로마군은 게르만족으로부터 영토를 지키는 것에 성공합니다.


이후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게르만족들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부족들만 다시 게르마니아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 때, 로마제국의 기록에 의한 게르만족에 이미지는 비교적 큰 키와 새하얀 금발, 그리고 푸른 눈동자를 가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 특징이 분명한 외모를 기진 게르만족을 부를 때에 로마병사들은 금색이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게르만족은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게르만족에 포함된 수 많은 부족들의 분산된 로마침략이 이어졌습니다. 전면전이 아닌 국지전을 유발한 것입니다. 로마는 이제 어느 지역에서 게르만족이 들이닥칠지 모르고 분산된 게르만족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3.로마와 게르만족의 협력

시간이 흘러 로마제국에 게르만족에 의한 피해가 막대하다는 사실을 알고 정책을 바꿔서 많은 게르만족들과 로마제국은 협력관계를 갖게 되며 조화롭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협력된 사회도 잠시 뿐, 기원 후 4세기 말에 대규모의 훈족이 흑해 연안에 정착생활을 하던 게르만족 쫒아내게 됩니다.


4.게르만족의 대이동

훈족의 공격으로 패배한 게르만족은 민족 대이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게르만족의 대 이동입니다. 이제 게르만족의 수많은 부족들은 다뉴브 강을 건너서 다시 로마영토로 밀려오게 됩니다. 엄청난 수의 게르만족은 이후 넓은 땅을 가진 로마제국 곳곳에서 게르만 왕국을 세우게 됩니다.

로마의 곳곳에서 세운 왕국들은 프랑크 왕국,부르군드 왕국,서고트 왕국,동고트 왕국,반달 왕국 등의 나라를 세움으로서 각각의 체재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중세시대의 특징인 군주사회의 모습을 극강으로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이 영향력으로 실제로 현재 북서부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게르만족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다시 역사로 돌아가 각 왕국끼리의 견재 끝에서 결국 프랑크 왕국만이 생존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게르만족의 왕국 중에서 

   프랑크 왕국이 살아남은 이유

1.다른 왕국들에 비해서 이동거리가 짧았습니다. 역사적으로 그 나라의 지형은 경제의 흐름과, 무역의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럼에도 당시에 언제 어디서 적군이 영토를 침범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필요의 이동거리가 짧았던 프랑크 왕국은 자신들의 살던 지역을 천천히 확장만 하면 되는 것이였습니다.

2.프랑크 왕국의 초대 왕인, 클로비스 왕 통치시대 때 크리스트교, 즉 그리스도교로 왕국의 종교를 개종하는 정책을 시작하면서 주변의 수많은 로마인과 당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교황에게 인정받는 왕국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3. 타 민족과의 전쟁이 비교적 매우 적었습니다. 동로마와는 거리가 너무 멀었고 점점 조여오는 이슬람의 세력이 확장됨에 따라 곳곳에서 영토침략이 있었으나, 프랑크 왕국의 군주였던 카롤루스 마르텔루스는 이슬람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면서 서유럽의 영역을 이슬람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내었습니다. 또한 중세시대의 막강한 힘을 보유한 교황에게 자기 땅을 바침으로 협조관계에 들어섰고, 더욱 발전하는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교황과의 교황도 덕분에 이슬람으로부터 보호받는 방어벽의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서로 좋은 발전관계라 할 수 있겠습니다.


●프랑크 왕국의 발전

프랑크 왕국이 가장 발전했던 시기를 알아보겠습니다. 당시 서로마 제국의 황제는 자기 땅의 모든 민족들을 크리스트교(그리스도교)로 개종시기지를 원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우지 못했고, 글자조차 읽을 수 없는 문맹이었습니다. 역사에서 글을 모른다는 것은 그 국가의 문화수준을 결정짓습니다. 그 국가의 문화의 발전은 나라 자체의 발전으로 이어집니다. 때문에 의도가 어찌되었든 크리스트교의 개종을 위해서 민족들에게 글자와 읽기와 쓰기를 교육시킵니다. 당시 문맹이 많았기에 학교를 건설하고 로마체를 만들어서 글자와 문자를 하나로 통일시키는 작업을 합니다. 이 때 서로마에 위치한 프랑크 왕국 또한 엄청난 문화적 발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프랑크 왕국의 몰락

하지만 프랑크 왕국은 전성기를 누리다가 결국 몰락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프랑크 제국의 영토세습 문제였습니다. 당시 왕이 죽으면 자식들이 영토를 나누어 가지게 되는데 당시 왕 카롤루스가 사망하면서 당시 아들이었던, 로타르,루드비히 2세,샤를2세, 에게 영토를 나눠주게 됩니다. 하지만 로타르가 사망하게 되면서 루드비히 2세,샤를2세가 영토를 나누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나라가 서,중,동 으로 나뉘게 됩니다. 이것을 베르됭 조약이라고 합니다.

이 나뉜 프랑크왕국은 오늘날의 프랑스,이탈리아,독일이 됩니다. 때문에 이 세 나라들의 역사의 시작은 같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밖에도 벨기에,노르웨이,덴마크,아이슬란드,스웨덴,스코틀랜드,프랑스,잉들랜드,이탈리아의 사는 인종들은 당시 유럽을 차지했던 게르만족의 후예들입니다.


●게르만족의 분류

동 게르만족 : 고트족,부르군드족,루기족,반달족

서 게르만족 : 프랑크족,삭소니족,프리시족,수에비족,앙글리족

북 게르만족 : 스칸디나비아 부족,가우티족,다니족,수이오네스족


●게르만족의 문화

게르만족은 유럽 민족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있습니다. 그 중 켈트족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게 때문에 켈트족의 풍습과 게르만족의 풍습이 비슷한 것이 많습니다. 게르만족은 전투민족으로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공격무기 보다는 방패를 중요시 여기는 습성이 있는데 적에게 등을 보이는 것이 수치인 것 처럼 전쟁에서 방패를 잃어버리는 것은 전사로서의 수치라고 여기기 까지 할 정도입니다. 게르만족의 성인식 때 방패를 선물로 나누는 정통이 정통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타 국가들의 창,활,검과 같은 무기와 달리, 도끼를 던지는 용도로 만들어 사용합니다. 투척용 도끼는 프랑크족이 거의 유일하게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러나 전투민족의 이미지로 인해 거친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예의가 바르고 도덕적 예절을 지키도록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받는 것이 게르만족입니다. 엄격한 도덕적 법이 존재하고 상류와 하류의 큰 차이가 거의 없었고 대부분 평등하여 노예에게도 큰 억압이 없었습니다. 게르만족에게 노예란, 우리가 아는 노예가 아니라 그저 하위 계급을 말할 뿐, 노예의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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